한강 채식주의자 리뷰 : 영혜가 던진 1가지 질문이 내 삶을 뒤흔들다

서론

노벨문학상 소식을 듣고도 마음은 쉽게 서두르지 않았다. 오래전 처음 읽었을 때의 서늘함이 아직 식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시 책을 펼친 건, 그 불편함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흔들어줄 힘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재개정 장정의 차가운 무늬를 손끝으로 더듬으며, 나는 한 문장씩 천천히 되돌아왔다. 한강 채식주의자는 여전히 단단했고, 그 단단함은 이번에도 나를 미세하게, 그러나 결정적으로 바꾸어놓았다.

📚 도서 정보

한강 채식주의자
제목 채식주의자
저자 한강
출판사 창비
출간일 2022년 03월 28일
정가 17,000원
판매가 15,300원
ISBN 8936434594 9788936434595

책 소개: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하며 한국문학의 입지를 한단계 확장시킨 한강의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를 15년 만에 새로운 장정으로 선보인다. 상처받은 영혼의 고통과 식물적 상상력의 강렬한 결합을 정교한 구성과 흡인력 있는 문체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섬뜩한 아름다움의 미학을 한강만의 방식으로 완성한 역작이다. “탄탄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작품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꿈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라는 평을 받으며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1. 선입견

읽기 전 내 머릿속엔 윤리와 실천의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는 막연한 예감이 있었다. ‘채식주의자’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강 채식주의자는 식단의 선언이 아니라 존재의 경계를 질문하는 소설임을 금세 드러낸다. 더욱이 주인공 영혜는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채식주의자’라 이름 붙이지 않는다. 제목이 먼저 내게 씌운 프레임을 소설은 끝내 해체한다. 2022년 개정판의 담백한 표지는 그 오해를 부추기지도, 쉽게 해소해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차가운 여백으로 독자를 무장해제한다. 작가에 대한 기존 인상—응시를 끝까지 밀고 가는 문장, 폭력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붙드는 태도—역시 이번에도 예외가 없었다. 노벨문학상으로 다시 주목받는 지금, 나는 ‘유명세’의 소음보다 ‘문장’의 미세한 떨림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표지의 침묵부터 이미 예감했다. 한강 채식주의자는 제목과 표지, 그리고 선입견 사이에서 독자의 감각을 서서히 재배치한다.

2. 읽으며 바뀐 생각들

한강 채식주의자를 다시 읽으며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은 ‘서사 중심’으로만 소설을 읽던 내 습관이었다. 이 작품의 힘은 사건의 나열보다 시선의 이동에서 발생한다. 세 부분으로 나뉜 구성은 남편, 형부, 언니의 내밀한 1인칭 혹은 근접 초점으로 진행되지만, 정작 영혜는 끝내 ‘화자’의 자리를 부여받지 못한다. 이 부재가 오히려 영혜의 존재를 강렬하게 부각한다. 부르는 목소리들 사이에서, 호출된 자의 침묵이 점점 커진다.

문체는 차갑고 절제되어 있으나, 이미지의 체온은 높다. 짧은 문장, 응시하는 묘사, 반복되는 감각 단어들이 신체의 반응을 유발한다. 나는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어깨 근육이 느슨해졌다가 다시 굳는 것을, 호흡이 얕아졌다가 길어지는 것을 느꼈다.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같은 속삭임이 지나갈 때면 풍경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식물적 상상력은 공상으로 멈추지 않고, 우리의 일상적인 윤리 감각과 충돌한다. ‘무해함’에 대한 지향이 어떻게 비인간화의 언어와 닿는지, 혹은 그 반대편에서 어떤 존엄을 회복하는지, 소설은 서둘러 답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전환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대한 감각이었다. 한강 채식주의자는 노골적 폭력과 일상적 순응 사이의 회색 지대를 더 오래 응시하게 만든다. 다정해 보이는 말투, ‘정상’이라는 말에 기대는 설득, 체면을 앞세운 결정을 통해 얼마나 많은 강제가 ‘사랑’의 얼굴로 통과하는지, 세 화자의 시선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증언한다. 그때마다 나는 내 안의 무언가가 들켰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끝으로, 이 소설이 ‘설명’보다 ‘잔상’을 택하는 태도에 마음이 움직였다. 어떤 장면은 한 문장으로, 어떤 심리는 단 한 개의 형용사로만 제시된다. 빈칸이 많은 문장은 독자의 몸으로 메워진다. 한강 채식주의자를 덮고 나면 줄거리보다 체감이 남는다. 그 체감이 하루, 이틀을 지나며 ‘생각’으로 변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연된 충격이, 나를 바꾸는 실제의 힘이었다.

3. 내 삶에 남은 잔상

장을 보다가 정육 코너 앞에서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영혜가 “고기 때문이야.”라고 중얼대던 호흡이 내 귀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트레이의 광택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식탁 위에서 사라지는 것들의 몫을 떠올렸다. 그 순간부터 식단을 바꾸진 않았지만, 섭취의 속도와 태도는 확실히 달라졌다. 한강 채식주의자는 손의 습관을 바꾸는 데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눈의 초점을 바꿔놓는다.

가로수 아래를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나뭇가지의 각도를 본다. 그 잎사귀들의 무해한 존재감이 한동안 가슴을 눌렀다. ‘나는 다른 존재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무해해질 수 있을까?’ 제목이 던진 1가지 질문이 일상으로 스며든 것이다. 그 질문은 거창하지 않았다. 말수를 줄이거나, 화를 내기 전 한 번 숨을 고르거나, 쓸모없는 비난을 삼키는 일에서 시작했다. 눈에 띄지 않는 미세한 조정이었다.

독서의 취향에도 변화가 생겼다. 사건이 많은 책보다, 관찰이 깊은 책을 찾게 됐다.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다시 펼쳤고, 폭력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문장들을 천천히 읽었다. 무엇보다, 타인의 침묵에 더 긴 시간을 허락하게 되었다. 한강 채식주의자는 말하지 않는 자의 자리—그 결핍 자체—를 어떻게 존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습장이었다. 그 연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4. 추천 독자 & 읽기 팁

감각에 예민한 독자, 신체와 존재의 경계를 탐색하는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특히 권한다. 반대로 자극적 이미지나 가족 내 강제, 자해 묘사 등에 취약하다면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읽기를 권한다. 한강 채식주의자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어 하루에 한 부씩 읽고 쉬어가는 호흡이 적당했다. 밤늦게 몰아읽기보다 낮의 빛 아래에서 간헐적으로 멈추며 읽는 편이 텍스트의 체온을 더 안전하게 받아들이게 해준다. 사전지식은 필수적이지 않지만, ‘영혜가 화자가 아니다’라는 점만 염두에 두면 시점의 이동을 더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다. 문장에 밟히는 감각을 무시하지 말고, 멈출 지점을 스스로 정해두는 것—그것이 이 소설의 올바른 독서 예절이다. 이 글은 in-book.co.kr 편집자의 독서 기록을 바탕으로 했다.

자주 묻는 질문

이 책이 어려운가요?

문장 자체는 명료하지만, 다성적 시점과 신체 감각을 전면에 호출하는 묘사가 심리적 난도를 높인다. 서사의 난해함보다 정서적 충격이 ‘어려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천천히, 때로는 소리 내어 읽으면 호흡이 안정된다.

완독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리나요?

평균 독서 속도라면 5~7시간, 빠른 독자라면 3~4시간, 문장을 곱씹는 독자라면 이틀에 걸쳐 각 부를 나눠 읽는 방식이 적합했다. 한강 채식주의자는 쉬어가기 좋은 분절이 분명해 시간 배분이 수월하다.

비슷한 책을 읽은 독자에게도 새로울까요?

첫째, 주인공을 화자 자리에서 비켜놓음으로써 발생하는 윤리적 공백이 독특하다. 둘째, 식물적 상상력이 신체와 폭력의 언어를 관통해 일상 윤리를 재구성하는 방식이 신선하다. 둘 모두 한강 채식주의자만의 차별점이다.

결론 ★★★★☆

한강 채식주의자는 ‘무해함’이라는 1가지 질문을 우리의 식탁과 말투, 시선의 습관으로 끌어내린다. 읽는 동안 불편했고, 덮고 나서 오래 맴돌았다. 고통과 아름다움의 공존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문장, 그리고 침묵의 윤리에 대한 사유가 뛰어나다. 오래 남는 책이다.

별점: ★★★★☆ (5점 만점)

한 줄 메시지: 타인에게, 세계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오늘 나는 얼마나 무해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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